심리학의 정의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동과 정신 과정, 영혼에 대한 학문"이라고 정의되는 심리학은 다양한 접근방법만큼이나 조금씩 그 정의의 폭을 다르게 할 수는 있지만 과학적인 절차를 수용하기 시작한 현대의 심리학 이후에서는 적어도 '행동에 대한 과학'이라는 협의의 정의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심리학은 처음부터 있던 것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부터 심리학의 역사를 일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원전부터 '심리학'에 대한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심리학에 대한 생각은 지속해서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의 정립 이전의 심리학은 그 경계가 모호하였고 철학자들이 다루는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인식론에 관한 문제를 다루어왔고, 그에 대한 논쟁은 르네상스 이후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파티마칼리파조의 선구적인 과학자 이븐 알하이탐은 그의 출간된 책에서 실험적인 방법으로 시각을 심리학적 개념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데카르트는 유명한 심신 문제에 있어서 이원론을 주장하여 마음과 몸이 별개의 실체라는 것을 주장하여 마음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중시하는 현대 심리학의 입장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의사 윌리스는 정신과적 치료의 목적으로 뇌의 기능을 연구하면서 '정신'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심리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독일 스콜라 철학자 괴켈은 그의 저서에서 처음으로 조건을 사용한 심리 실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독일의 형이상학 철학자인 볼프는 그의 저서를 출간함으로써 조건을 사용한 실험은 일반적인 심리 실험의 방법이 되었으며, 이보다 60년 전 크로아티아의 휴머니스트 마루릭은 조건을 사용한 그의 작업 목록을 남겼으나 그 내용은 소실 되었습니다.
형태주의 심리학
레빈은 여러 가지 이력을 지닌 이색적인 심리학자였습니다. 그는 사회심리, 발달심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사회심리학의 창시자로 간주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위상기하학을 차용하여 자신의 개념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그의 장이론은 생활공간이라는 개념을 핵심으로 하며, 이에 따라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환경과 사람 모두라는 것을 말하곤 했습니다.
형태주의 심리학은 1910년에서 2년에 걸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는 독일 심리학자 베르트하이머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시기입니다. 에렌펠스는 "형태질"의 존재를 주장하여 특정한 경험의 질은 개별적 감각 요소 이상임을 역설하였습니다.
슈툼프와 분트는 논쟁 과정에서 숙달된 청자들이 일반인들보다 음악적 관찰자로서 더 적합함을 주장하였습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창립에는 물리학자인 마흐, 철학자 에렌펠스, 칼 슈툼프 세 사람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후의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이들의 영향 아래 성장하였습니다.
베르트하이머는 가현운동에 주목하였고, 실제로는 없었지만 지각된 움직임을 '파이 운동'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를 토대로 그는 "부분 과정 자체가 고유한 성질에의 결정된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특히 코프카는 게슈탈트 심리학을 미국으로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고, 콜러는 이후 게슈탈트 이론의 보급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들은 특히 게슈탈트 현상이 어떤 원리로 조직되는지에 관심을 보이며 연구하였고, 이 연구들로 밝혀진 것들을 게슈탈트 체제화 원리라 이름을 붙여 발표하였습니다. 베르트하이머의 피험자였던 코프카와 콜러 역시 게슈탈트 심리학자였으며, 모두 슈툼프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원리는 근접성과 유사성, 좋은 연속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 심리학
1890년대에 이르러 오스트리아의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을 주창하여 독자적인 심리학 영역을 구축하였다. 이 중 리비도는 초기 프로이트, 타나토스는 2차 대전을 경험한 이후의 프로이트가 제창한 개념입니다. 정신분석이 심리학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의식'의 발견과 심적 결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 이후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정신 분석가들이 배출되었고, 그들 중 유명한 학자로는 융, 아들러 등 '분석심리학', 개인심리학' 등이 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오히려 칼포퍼가 주장한 반증 가능성과 경험적 증거가 과학의 주요한 속성이라는 주장이 속속히 반박당하고 오류를 지니고 있음이 밝혀짐에 따라 이러한 지적은 상당 부분 수그러들었습니다. 정신분석학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 이론 자체가 적용되지 않은 부분들과 문제점, 그리고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반발감 등으로 영향력이 축소되어서 현대 심리학에서 정신분석이 차지하는 위치는 크지 않습니다. 특히 실험심리학자 중 정신분석학을 지지하는 학자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대에 와서 정신분석학은 주로 임상가들에 의해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정신분석은 문학비평 등 심리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주목받는 추세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이론이 등장하고 임상가들이 그 부분들을 증명함에 따라 현재 임상가들의 심리학을 토대로 주목받고 있다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의 성립
1879년, 흔히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분트는 대학에 첫 심리학 연구소인 정신 물리실험실을 개설하였습니다. 미국의 철학자 제임스는 당시 심리학에서 다루는 주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심리학의 원리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파블로프는 유명한 고전적 조건형성 실험을 통해 학습 과정을 연구했습니다.
심리학
심리학의 역사
반응형
반응형
댓글